손주가 준 선물, 갱년기를 웃으며 지나가다
50대 중반, 어느 날 제 인생에 다시 아기 울음소리가 찾아왔습니다. 딸이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며, 자연스럽게 제가 손주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딸을 돕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생명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캐나다에서 오랜 시간 살아오며 겪었던 정서적 고립감,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갱년기. 그 속에서 저는 몸과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밤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고, 일상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자 마치 삶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처음 안아본 순간의 따뜻한 체온,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 첫 걸음을 뗄 때 제 손을 잡았던 그 작고 부드러운 손. 그 모든 순간들이 갱년기의 감정 기복을 부드럽게 녹여주었습니다.
손주를 보며 돌아본 내 삶, 그리고 다시 세워진 나
손주와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는 제 안의 무언가를 다시 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엔 항상 ‘해야 할 일’에 매달려 살았고, 자녀들을 키울 땐 여유조차 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손주와의 시간은 다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가르침보다는 함께함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할머니, 같이 놀자”는 한마디에 저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아이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안에서 저는 다시 웃고, 다시 놀고, 다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딸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랬겠지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딸의 서툰 육아를 보며 답답하기보다 오히려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야 자녀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주와 함께 만드는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
손주는 단지 ‘다음 세대’가 아니라, 가족 모두를 다시 연결해주는 존재였습니다. 부부 사이의 대화에 웃음이 생기고, 자녀와의 대화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사진을 주고받고, 아이의 행동 하나에 함께 웃으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저는 이제 육아를 끝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계속 실천할 수 있는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손주는 저에게 새로운 목표이자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갱년기를 지나며, 저는 손주 덕분에 약 없이도 감정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무기력했던 시절을, 아이의 웃음 하나로 견딜 수 있었고 이제는 하루하루가 감사와 회복의 여정이 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손주와의 시간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회복과 변화의 여정이었습니다. 갱년기의 불안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게, 저처럼 손주의 존재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을 다시 돌보고,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는 길.
그 길의 중심에 손주가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저를 웃게 만듭니다.